1980년의 「20인전」전에 로트렉은 다섯점의 유화를 출품했다. 여인들을 그린 그림들과 <물랭 드 라 갈레트>가 바로 그것이었다. 로트렉은 마지막 그림에 무척 흡족해 하여 이미 「앙데팡당전」에도 그것을 전시한 적이 있었다. 그의 그림은 20세기 그룹의 시냑, 르누아르, 오딜롱드롱, 시슬레 그리고 세 점의 그림을 보내 온 세잔과 반 고흐의 그림과 함께 전시되었다.

생 레미 드 프로방스 근처에 있는 생 폴 드 모졸 요양소에 입원해 있는 반 고흐는 비참한 환경 속에서 병과 싸우고 있었다. 그는 오히려 '정말 신들린 것처럼' 일하도록 자신을 몰아가는 발작을 기다렸다.  「20인전」이 열리는 브뤼셀 왕립미술관의 벽에는 그가 보내온 여섯 점의 작품이 승리의 팡파레처럼 그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. 로트렉은 존경심을 가지고 <해바라기>와 <담쟁이 덩굴>, <붉은 포도밭과 해지는 시각의 밀밭>, <꽃이 만발한 과수원>을 보았다. 이 정도까지 그리기 위해서는 역시 미쳐야만 하는 걸까? 신경쇠약, 공기. 위대한 작품들은 병적인 이면에서 솟아오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!

하지만 이구동성으로 반 고흐를 칭찬했던 것은 아니었다. 1월 18일 전시회가 개막될 때 20세기 그룹의 화가들과 초대 손님인 로트렉과 시냑이 연회에 참석했다. 48시간 전에 20세기 그룹의 멤버인 벨기에인 앙리 드 그루는 반 고흐의 서투른 그림을 자신의 그림들이 전시된 전시장에서 빼지 않으면 자기 그림들을 모두 가져가겠다고 위협한 바 있었다. 연회가 열리는 동안 드 그루는 반 고흐가 '무식한 사람' 이고 '허풍선이' 라며 비난을 퍼부었다. 로트렉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높이 올리고는 외쳤다.

"반 고흐를 모욕하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!"  

로트렉, 몽마르트의 빨간 풍차, pp.88-89 앙리 페뤼쇼 지음, 강경 옮김  다빈치(2001)


이제야 조금씩 인간들이 연민으로 다가온다. 이전에는 분노였다. 당연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. 이젠 그렇지 않다.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수 밖에 없다.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표현은 꽃에 대한 모독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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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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